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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신부: 슬픔의 연대, 글의 연대성

배델창 2018. 10. 29. 11:15



[시(詩) 읽어주는 신부] 슬픔의 연대, 글의 연대성

 

 

“올 여름은 잔인하네요. 황현산 선생도….” 지난 8월 8일에 제자 신부 한 사람이 보낸 짧은 카톡 메시지입니다. 8월 21일에는 허수경 시인의 암투병 소식을 신문기사로 본 후,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에 실린 글 한 편을 카톡으로 보내왔습니다. 글을 사랑하고 공부를 좋아하는 그 제자 신부에게 황현산 선생의 죽음과 생을 정리하고 있다는 허수경 시인의 소식이 많이 슬펐나 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노회찬 의원과 소설가 최인훈 선생의 죽음 소식에 뒤이어, 황현산 선생의 죽음과 허수경 시인의 말기암 투병 소식은 지난 여름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더 이상 황현산 선생의 새로운 글들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많이 아쉽고, 허수경 시인의 새 시집을 기다리는 즐거움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안타까웠습니다. 황현산 선생과 허수경 시인은 적어도 글의 세계에서 저의 친인이었다는 것을 확인합니다.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와 깊이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어쩌면 말들의 대화를 통한 관계보다 글을 읽는 행위를 통한 관계가 더 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의 진심은 말보다는 글에, 글보다는 행동(삶)에 더 많이 담겨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한겨레신문에 가끔 실리는 문학평론가 김병익 선생의 글을 즐겁게 챙겨 읽습니다. 선생은 노년에 들어서도 여전히 책을 읽고 생각을 벼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선생의 글에 담겨있는 정직하고 부드러운 통찰과 현숙한 지혜에 자주 감탄하게 됩니다. 한편으로 김병익 선생의 글을 읽을 때마다 선생의 동료였던 김현 선생을 다시 기억합니다. 마흔 여덟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김현 선생이 살아있었다면 노년의 선생은 과연 어떤 글을 썼을까? 문학적 이슈들에 대해 김현 선생은 어떤 입장을 견지하고 자신의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 유려하게 펼쳤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쉽습니다. 김현 선생의 노년의 글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말입니다. 이제는 황현산 선생이 그렇습니다. 문학적 문제들에 대해서 주로 글을 쓴 김현 선생과는 달리, 황현산 선생은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글로 자주 표현했습니다. 그의 식견과 혜안이 담긴 글은 많은 울림과 공감을 낳았습니다. 황현산 선생이라면 이 문제들에 대해 과연 어떻게 생각했을까? 하는 물음이 자주 떠오를 것 같습니다. 선생의 생각과 글이 많이 그리워질 것입니다. 허수경 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인들의 새로 나온 시집을 살 때마다 『혼자 가는 먼 집』의 그 절창이 못내 아쉬울 것입니다.

 

누군가의 글을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일은 사랑하는 연인의 일과 같습니다. 몇 년 전 매주 토요일만 되면 한겨레신문 토요판에 연재되던 “정희진의 어떤 메모”와 “신형철의 격주시화”를 기다리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람은 몸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나누기도 하지만 글을 통해 깊은 공감과 연대를 경험합니다. 글을 매개로 저자와 독자는 연대를 형성합니다. 더 나아가 글을 매개로 독자와 독자가 연대하기도 합니다. 건강한 의미에서 글에 대한 일종의 팬덤(fandom)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황현산 선생의 글과 허수경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글의 연대성, 즉 글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깊이 연결됨을 저는 믿습니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공감하는 일은 그를 사랑하는 일입니다. 사람의 사랑은 몸을 매개로 소통되기도 하지만 사람의 사랑은 글을 매개로 더 큰 육화의 신비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글을 통해 사랑했던 사람들의 슬픈 소식과 글이 가져다주는 연대성을 깊이 절감하면서 심보선 시인의 시를 다시 읽었습니다. 그의 첫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 초』(문학과지성사, 2008)는 제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읽은 시집 가운데 깊은 인상으로 남았던 첫 번째 시집입니다. 대학시절 이성복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읽었던 때만큼의 강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심보선 시인의 시에 드러난 지적 사유의 리듬은 이성복의 리듬과 닮아 있었습니다. 쓸쓸한 발랄함이었습니다. “전날 벗어놓은 바지를 바라보듯/ 생에 대하여 미련이 없다/ …/ 그때 하늘 아래 벗은 바지 모양/ 누추하게 구겨진 생은/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였다/ 장대하고 거룩했다.”(「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 “…/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슬픔이 없는 십오 초」)

 

그의 첫 시집에는 지식인 특유의 자의식적 “엄살”이 가득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아직도 슬픔에 남몰래 집착”(「그녀와의 마지막 테니스」)하며 “아이의 하나로서 불안과 슬픔만을 완벽하게”(「아이의 신화」) 느끼고 있으며 “구원 없는 아름다움 앞에서 나는 오늘도, 속절없이, 아프다”(「떠다니는 말」)고 엄살을 떱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탄식하며 표현했듯이, 죽음 앞에서 인간은 그저 하나의 소문에 불과하다는 것을 시인 역시 시인합니다. “나는 나에 대한 소문이다 죽음이 삶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불길한 낱말이다 나는 전전긍긍 살아간다 나의 태도는 칠흑같이 어둡다.”(「어찌할 수 없는 소문」) 그래서 “엄살이 유일한 비극적 상황”(「어찌할 수 없는 소문」)이라고 시인은 자백합니다. “그대가 세상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대를 상상”(「먼지 혹은 폐허」)하는 생의 비애 앞에서 한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엄살을 떨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쓰거나 사랑을 꿈꾸는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노래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생의 완벽을 꿈도 꾸지 못했으리.”(「노래가 아니었다면」) “나와 같은 범부에게도 사랑의 계시가 어느 날 임하여 시(詩)를 살게 하고 폐허를 꿈꾸게 하네.”(「먼지 혹은 폐허」) “사랑을 잃은 자 다시 사랑을 꿈꾸고, 언어를 잃은 자 다시 언어를 꿈꿀 뿐.”(「먼지 혹은 폐허」)

 

사람들은 생각(사유)을 하고 다짐을 담은 경구를 되뇌며 자신을 다잡으면서 생을 살아냅니다. 시인 역시 “생각한다는 것, 그것이 나의 지병이었다”(「성장기」)고 말하며 “타인들의 칭송과 멸시와 무관심에 연연치 않는다/ 즐거움과 슬픔만이 나의 도덕/ 사랑과 고백은 절대 금물/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단코 침묵이다.”(「구름과 안개의 곡예사」)라는 다짐을 합니다. 사실 우리는 일기장에 숱한 다짐과 결심들을 적습니다. 이 폐허 같은 생을 건너가기 위해서는 때때로 유치한 다짐과 결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생각은 자주 지식인의 무기력한 질병으로 전락하며 다짐과 결심만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사실을 또한 우리는 압니다. 시인 역시 다짐과 결심을 담은 경구들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드러냅니다. “온갖 경구들을 남발하고 싶어지는 밤이 오리라/ 오오 그중 단 하나라도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면.”(「목가풍으로 깊어가는 밤」) 또 시인에게는 생의 의미를 찾는 형이상학(철학)도 종교도 아무런 구원이 되지 못합니다. 형이상학자는 그저 의자에 앉아 현실을 알지 못하는 공허한 유령이 되어가는 존재이기에, “그가 온 힘을 다해 절규해보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천 년 묵은 형이상학자」)고 시인은 냉소적으로 말합니다. “바람이 불면 가지들은 미친 듯이 성호(聖號)를 그어댔”(「성장기」)지만 “알레르기가 종교를 능가하는 시대라서,” 시인은 “너를 잊기 위해 나 그간 여러 번 개종하였다”고 씁쓸하게 말합니다.(「종교에 관하여」)

 

세상과 삶에 대해 슬픔과 환멸과 냉소의 태도를 보였던 시인은 두 번째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 2011)에서 조금 달라진 자세를 드러냅니다. “나는 세계를 죽도록 증오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내가 세계를 한없이 사랑한다는 뜻이기도 하다”(「Mundi에게」)고 고백합니다. 비록 지상의 삶이 “無에서 無로 가는 도중에 있다는/ 초라한 간이역에 아주 잠깐”(「지금 여기」) 머무는 일이라 할지라도 ‘사랑’ 때문에 생을 견딘다는 우리 생의 가장 자명하고 유치한 결론에 시인은 동의합니다. “사랑은 인간이 신에게 빌려온 유일한 단어예요. 그러니 사랑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쓸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죠.”(시집 뒤표지에 실린 시인의 말) 인간은 무능하지만 사랑은 유능합니다. “사랑은 모든 계획에 치밀”하고 “사랑은 삶을 과장”할 수 있습니다.(「잎사 . 귀로 듣다」) 저의 개인적 취향과 편견에 의한 판단이지만 두 번째 시집에 실린 「‘나’라는 말」이라는 시는 숱한 시인들의 사랑에 관한 시 가운데서 손꼽히는 절창으로 여겨집니다. “나는 ‘나’라는 말을 썩 좋아하진 않습니다/ …/ 하지만 내가 나라는 말을 가장 숭배할 때는/ 그 말이 당신의 귀를 통과하여/ 당신의 온몸을 한 바퀴 돈 후/ 당신의 입을 통해 ‘너’라는 말로 내게 되돌려질 때입니다/ 나는 압니다. 당신이 없다면,/ 나는 ‘나’를 말할 때마다/ 무(無)로 향하는 컴컴한 돌계단을 한 칸씩 밟아 내려가겠지요./ 하지만 오늘 당신은 내게 미소를 지으며/ ‘너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사람은 ‘나와 너’이기 때문에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너’이기에 힘들지만 ‘너’이기에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사람과 삶과 사랑의 역설입니다.

 

내가 오늘 한 일 중 좋은 일 하나는

매미 한 마리가 땅바닥에 배를 뒤집은 채

느리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준 일

죽은 매미를 손에 쥐고 나무에 기대 맴맴 울며

잠깐 그것의 후생이 되어준 일

눈물을 흘리고 싶었지만 눈물이 흐르진 않았다

그것 또한 좋은 일 중의 하나

태양으로부터 드리워진 부드러운 빛의 붓질이

내 눈동자를 어루만질 때

외곽에 펼쳐진 해안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그때 나는 좋았던 일들만을 짐짓 기억하며

두터운 밤공기와 단단한 대지의 틈새로

해진 구두코를 슬쩍 들이미는 것이다

오늘의 좋은 일들에 비추어볼 때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조금 위대한 사람

나의 심장이 구석구석의 실정맥 속으로

갸륵한 용기들을 알알이 흘려보내는 것 같은 착란

그러나 이 지상에 명료한 그림자는 없으니

나는 이제 나를 고백하는 일에 보다 절제하련다

발아래서 퀼트처럼 알록달록 조각조각

교차하며 이어지는 상념의 나날들

언제나 인생은 설명할 수 없는 일들투성이

언젠가 운명이 흰수염고래처럼 흘러오겠지

 

두 번째 시집에 실린 「좋은 일들」이라는 시의 전문입니다. 시인은 삶에 대한 한결 부드러운 태도를 보여줍니다. 생이라는 운명의 궤도 안에서 그저 곁에서 지켜봐주고 기억하고 재현하는 일이 사람의 일이며 사랑의 일이라는 것을 담담하게 노래합니다. 미물(微物)을 위해 함께 울어주는 그 사소함으로 생은 빛난다는 것을 시인은 조근조근 들려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문학과지성사, 2017)에서 시인은 타인의 슬픔에 더 예민해집니다. 시인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처음부터 “그들의 슬픔을 손가락의 삶-쓰기로 옮”(「인중을 긁적이며」)기는 일이었습니다. 시인은 점점 “고통스런 삶과 빌어먹을 현실”(「멀리 떠나는 친구에게」)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에 대해 조심스럽게 노래합니다. “두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게 시”(「형」)라고 시인은 믿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사람에게 “고통은 공통의 심연”(「공통의 것」)이며 사람은 서로서로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연대성을 시인은 살짝 감상적으로 표현합니다. “나는 안다/ 시를 쓰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내 대신 죽어간다는 사실을/ 그들은 내 대신 죽어간다는 사실도 모른채/ 죽어간다…/ …/ 나의 시가 누군가의 슬픔을/ 대신해 사라지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축복은 무엇일까」) 이라고 말입니다. 용산참사, 구의역 청년의 죽음, 쌍용차 해고노동자에 대한 시적 서술을 통해 사회적 삶에 관심을 드러내는 시인은 생각과 말보다는 삶의 구체성과 물질성을 강조합니다. 사람과 삶에 있어서 “표정을 갖는다는 것은/ 감정이 아니라 근육의 문제”(「근육의 문제」)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생각은 멀어질수록 단맛으로 변하고/ 빵은 멀어질수록 쓴맛으로 변한다/ 그는 오로지 빵의 관점에서 하루를 시작한다”(「아침의 안이」)고 말합니다. 지식인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만 관심이 있고,” 자칫 “자신보다 나약한 자들에 과장스런 연민의 감정을 갖는” 위선자로 전락할 위험이 있음을 경고합니다.(「당나귀 문학론」)

 

심보선 시인의 시집을 다시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의 정직한 성찰과 솔직한 자기고백이 부러웠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사유와 성찰을 과시하지도 않고, 또 성찰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습니다.(계간 『문학동네』 2017 겨울호 시인의 인터뷰에서) 삶의 진실은 운명을 견디면서 온몸으로 나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몸짓에서 드러난다는 것을 인정할 줄 아는 겸손한 지식인의 모습을 시인은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저는 종교인으로 오래 살다보니 제 자신 안에 스스로 금제를 많이 설치하고 살아갑니다. 강론과 교리에 대한 가르침이라는 이름으로, 듣기보다는 말하기가 앞서는 경향도 있습니다. 정직한 자기고백과 성찰이 부족하고, 듣고 배우는 태도가 부족합니다. 또 제가 사용하는 신학의 말들은 삶의 구체성을 상실한 언어 같다는 느낌이 자주 듭니다. “환상과 지식이 만나면 고통뿐”(「천 년 묵은 형이상학자」)이라는 시인의 날카로운 지적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의 생은 “때로는 사는 의미를 포기해야 살아갈 수 있었다”(「어쩌라고」)고 시인은 노래하는데, 종교인으로 살아가면서 의미의 과잉이라 부를 만큼 의미와 가치만을 강조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힘들게 견디며 자신의 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몰아세우는 것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심보선 시인의 시들을 읽으면서 타인의 슬픔과 세상의 아픔에 예민한 사람에 대해 생각합니다. 어쩌면 타인의 슬픔에 연대하지 못하는 사람은 십자가의 주님을 만날 수 없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심보선 시인의 시들을 읽으면서 글을 통한 인연과 연대성을 생각합니다. 허수경 시인의 마지막 여정이 혼자 가는 먼 길이 되지 않기를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당신이 쓴 글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나로 하여금 단번에 당신을 사랑하게 만든 그 매혹적인 글을. 영혼에 관한 글이었던가요? 세상의 모든 글은 영혼에 관한 글이라고 믿습니다.”(「H.A.에게 보내는 편지」)

 

[월간빛, 2018년 10월호, 정희완 요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조직신학 교수, 안동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