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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이은 한국사랑
배델창
2018. 12. 27. 09:40
대를 이은 한국사랑 한국에서 2대에 걸쳐 가장 오랫동안 선교활동을 펼친 부부 의사 선교사로 한국 사랑에 헌신적이었던 홀 가족이 있었다. 의과대학 졸업 뒤에 미감리회에서 추천하는 뉴욕 빈민가 선교사업에 참여한 윌리엄 제임스 홀은 이곳에서 로제타를 만났고 함께 한국 의료 선교사로 파송되어 1892년 한국에서 최초의 서양 결혼식을 치르며 부부가 되었다. 제임스는 평양 선교를 위한 개척 책임자로 임명되어 평양 선교를 시작하였고 아내 로제타는 서울에서 각자 사역에 최선을 다했다. 첫아들 셔우드 홀이 태어났지만 제임스 홀은 아들의 돌에도 부상자와 환자 때문에 서울에 갈 수가 없었다 청일 전쟁이 일어나면서 평양은 전쟁터가 되었고 제임스 홀은 환자를 돌보다가 병에 감염되어 결국 한국에 온지 2년 만에 한국 땅에 묻히고 말았다. 그때 아들 셔우드는 두 살이었고 아내 로제타는 임신 중이었는데 그러나 이어 태어난 딸 역시 한국의 풍토병을 이기지 못하고 아빠 곁에 묻히고 만다. 무덤 앞에서 로제타는 “하나님 사랑하는 내 아들과 한국에서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조용히 기도했다. 로제타는 평양의 홀 기념병원에 근무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병원을 열어 맹인소녀들에게 점자를 가르치면서 한국 최초의 맹인 학교를 세웠고 이어 농아 교육도 시작했다. 박 에스더라는 한국 최초의 여의사를 키웠으며 이화여대부속병원과 인천에 간호 대학과 기독병원 고려대학 의과대학의 전신인 경성여자 의학전문학교를 설립한 사람 역시 로제타였다. 그녀는 미국이 뽑은 200대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가 된 아들 셔우드 홀은 부인 메리안과 함께 한국에 들어와 부모님의 한국사랑을 이어 나갔다. 그는 최초로 결핵협회를 창설하고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실을 만들어 그 판매액으로 결핵 퇴치에 앞장을 섰다. 그러나 일본과 미국의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면서 일본 정부는 셔우드 홀을 헌병대에 연행해 가서 간첩 혐의를 씌워 강제 추방하였다. 그리고 다시 91세의 나이로 한국 땅을 밟은 셔우드 홀은 서울 합정동 절두산 성지 외국인 묘지에 묻혀 있는 부모님과 여동생의 묘를 찾아 유언을 남겼다. "나는 여전히 한국을 사랑합니다. 내가 죽거든 내가 태어나 자랐던 사랑하는 이 나라 내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누이동생이 잠들어 있는 한국 땅에 묻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셔우드 홀은 1992년 그의 유언대로 가족들 곁에 묻혔다 영상제작 : 동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