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묻지 마세요
과거에 잘못한 일 때문에 후회하고 사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후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지나치게 후회하면서 과거에 매달려서 살 경우, 여러 가지 생각지도 않은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우선, 헛된 상상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게 됩니다.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은 이랬을 텐데’ 하고 공상하느라 다른 것을 못합니다. 물론 상한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한 자구책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냥 망상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습니다.
두 번째, 도돌이표 같은 인생,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 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인데도 불구하고, 현재에 다시 그 상황을 재현해서 복구하거나, 그런 과거 상황을 아예 없애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은 안 되고, 자아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과거형 인간이 되고 맙니다. 현재와 미래를 담보로 지나간 과거를 살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자아가 깊은 상처를 안은 채 마음 안의 동굴 속으로 숨어 버립니다. 그래서 성장이 멈춰 버립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 오히려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는 지나간 시간입니다. 과거에 어떤 일을 했건 흘러가게 두어야 합니다. 마치 흐르는 물을 흘러가게 두듯이 미련이나 후회도 그런 과거의 흐름에 놓아주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님께 그야말로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후회와 죄책감에 짓눌리지 않고 현재를 사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베드로, ‘반석’이라 불리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특히 기억하기 싫은 과거가 한 가지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각기 다릅니다. 후회하거나 우울해하거나 등등의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하면 좋은 기억에 지나치게 머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용은 다르지만, 마음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즉,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인 쿤다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에 대하여 써 보라고 하였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앞날보다 과거에 대해 쓰더랍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의 인지구조가 과거 지향적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사람이 과거에 매달리는 것은 심리적인 문제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앞으로 나아갈 것이 두려운 사람들,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에 머물면서 안전을 도모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과거는 만신창이입니다. 걷는 법을 몰라서, 길을 몰라서 넘어지고, 엎어지고, 때로는 길 아닌 길을 가다가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지기도 하고, 참으로 참담하고 힘겨운 일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그런 과거를 생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각나지도 않습니다. 지금의 저에게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십년, 칠십이 되기까지의 십년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십년간은 결실을 맺고픈 마음이 간절하기에 아까운 시간과 힘을 지나간 기억에 쓰기 싫은 것입니다. 가끔 과거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무기력해지고 짜증날 때는 춥고 배고픈 시절의 기억을, 우울할 때는 예전 여행 다닐 때의 행복한 추억들을 떠올립니다. 지금의 내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심리 처방으로 과거를 사용하곤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과 미래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것, 다시 주워서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도 여전히 과거에 매달려서 징징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엄동설한에 내놓고, 밥을 굶기시기 바랍니다. 과거에 자신이 한 일들에 대하여 과대평가하면서 “내가 이런 사람이야” 하는 말로 자신이 아주 지혜롭고 영리했음을 증명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말 사람이 그렇게 영리하고 지혜로운가? “과거의 일들에 대하여 일말의 후회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하는 물음에 대하여 심리학에서는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말합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선택에 대하여 늘 자신만만한 사람도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어떤 이는 건강하게 살고, 어떤 이들은 우울하고 불행하게 사는가? ‘어떻게 후회하는가?’로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때로 후회할 만한 어리석은 행동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때 그 정도는 알고 했어야 하는데’ 하는 심정이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이 아닌 사람들입니다. 심리적으로 성숙해가지만, 죽을 때까지 완전해질 수는 없는 한계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지혜로운 생각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심리적으로 혼란한 경우 더 그렇습니다. 과거의 결정으로 인하여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했을 때는 후회하기 마련인데, 그 다음 어떤 행동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돌아서서 반대 방향으로 가는가 아니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후회만 하는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자신을 매몰차게 몰아붙여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을 채찍질하려는 생각이 들 때에는 바로 그 생각 자체를 멈추어야 합니다. “그만!”하고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해도 자기비난이 멈추지 않는 경우는 왜 그런가? 사람은 늘 바른 판단을 해야 하고, 이성적이어야 하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병적인 신념이 강한 경우에 그렇습니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결과적으로 자기 파괴적으로 나타날 뿐, 아무런 소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바보야”하고 말씀하신 것은 그런 의미에서 자가 치료적 효과를 갖는 말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애고, 바보야.”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잘못한 자식을 보고 웃으면서 놀리듯 말씀하신 것이 힐링 언어였음을 아시기 바랍니다.
물론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이런 멍청하고 바보 같은 놈, 나가 죽어라”하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은 전혀 반대 결과가 나타나지만도…
* 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