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만든다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복잡한 감정들… 그런 속상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앞에서 상대방이 질리도록 내 자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은 오랜만에 성공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칭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은 혼자 있으면 심하게 공허하고, 불안하고,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자기만족의 정도가 건강치 못할 때 일어나는 현상들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자기 인생에 대하여 너무 만족해서도, 너무 불만을 가져서도 안 된다고 합니다. 너무 만족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눈치 없이 자랑질하는 주책없는 짓을 하게 되고, 너무 불만족스러우면 다른 사람들을 시기질투하고, 때로는 뒷담화를 하는 유치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지요. 남이야 호텔에서 양식을 먹건 말건 방안에서 먹는 라면이 더 행복하다면 그 사람은 건강한 자기만족감을 가진 사람입니다. 라면을 먹으면서 “이게 사람이 먹는 음식이야?”한다면 자기만족감이 부족한 사람이고요. 차라리 자기만족감이 많은 것이 부족한 것보다 낫습니다. 자기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운 사람들은 기껏해야 다른 사람들로부터 팔불출 소리나 듣지만 마음은 공중에 떠다녀서 나름 행복한 반면, 자기만족감이 부족한 사람들은 자신을 진흙탕에 처박아서 비참하게 만듭니다. 어쨌건 자신을 진흙탕에 처박을 수 있는 사람도, 거기서 헤어 나오게 하는 사람도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임을 아셔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입니다. 자신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사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이 명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자기기만적 삶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프로이드는 당대의 정신적 문제들의 핵심은 성적 욕구에 있다고 지적했다가 성토를 당했습니다. 성적 욕구를 억압하고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당대 지식인들의 거부감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주장이 맞았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현대에 와서 인간의 모든 선택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다는 가설이 주장되고 있어서 헌신과 희생과 순교자적인 삶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선택한다는 가설은 현실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막상 아이들이 부모 말을 듣지 않으면 속이 상하다고 합니다. 이유는? ‘너는 내 행복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는데 왜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냐?’하는 속마음 때문입니다. 이런 내적 욕구는 부부관계, 직장관계 등등 사람과 사람이 사는 모든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살려고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선택하면서 살아갑니다.
남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분들이 계십니다. 좋은 분들이지요. 그런데 그런 봉사가 왠지 석연치 않은 분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쁨을 위해서 자신의 기쁨을 희생한다고 하는 사람들. 이분들은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줄 거라고 되뇌면서 마치 숙제처럼 봉사합니다. 그분들을 보면 마치 세상 짐을 혼자서 지고 가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에 대하여 주위에서 별로 인정을 안 해준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정은커녕 때로는 제대로 대우도 받지 못합니다.
왜 그런가? 이들 마음 안의 무의식적인 소망 때문입니다. 이들은 희생을 대가로 애정을 갈구해서 봉사 받는 사람들의 마음에 부담감을 안겨줍니다. 또한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무의식적인 계급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희생하고 봉사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보다 도덕적 우위에 서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을 필요로 하게 만들어서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러는 바람에 봉사를 받는 사람들은 은연중에 이들의 심리적인 노예가 되어 버리기에 왠지 불편하고 부담스런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들이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늘 자신에 대한 강한 죄책감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느님 대전에 자기 같은 죄인은 없다는 말을 늘 달고 살기에 자신들의 마음 안에 우월감이 있다는 것을 보지도, 인정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늘 주님의 수난과 죽음만을 묵상하고, 항상 마음 안에서 십사처를 도는 삶을 삽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삶이 십자가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늘 주님의 죽음에 대하여 책임져야 한다고 고행 같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다른 신자들이 죄책감을 갖도록 유도합니다. 행복, 웃음, 부활이란 개념 없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고행하는 수도자처럼 살면서 사람들에게 무언의 부담감을 안겨줍니다. 이렇듯이 모순된 마음으로 신앙생활과 봉사활동을 하기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선택이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헌신. 봉사 등등의 허구적이고 기만적인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을 돌보면서 얻는 기쁨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미 심리적 보상을 받았으니 다른 것은 필요 없다고 합니다. 진정한 봉사자와 짝퉁들은 이런 자의식의 진솔성 여부에 따라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행복의 길을 알려주신 분. 성경은 말 그대로 행복지침서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현혹되지 마시고, 어린아이처럼 주님 안에서 행복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 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