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한국 가톨릭교회음악의 연구현황
한국 가톨릭교회음악의 역사는 1784년 교회의 창설과 함께 비롯되어 현재까지 약 200여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초기에는 4.4조의 운율에 교리내용을 가사로 실어 부른 천주가사성가와 그레고리오성가가 함께 한국교회음악을 주도해 갔다. 그러다가 20세기초에 이르러서는 서양음악어법으로 쓰여진 새로운 한글성가가 그 역할을 담당했다. 이 새로운 한글성가는 한국 포교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프랑스 파리 외방 선교회와 독일 분도회의 영향으로 프랑스와 독일성가가 한글로 번역된 것이다. 들여온 성가가 이렇게 사용된 경향은 1948년도 이문근신부를 시작으로 하는 한국인에 의한 창작성가가 나타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음악의 흐름에 있어 큰 하나의 획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이다. 바티칸공의회에서는 전례의 자국어사용을 허용했다. 전례헌장(119조)에서는 포교지방 국민들의 종교적 감정을 형성하기 위하여 그들의 종교생활 및 사회생활에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고유한 음악전통을 전례에 적응시킬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그 국민의 전통음악을 거룩한 행사에서 사용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것은 전례음악의 토착화로 귀결되며, 가톨릭 음악계의 커다란 논의거리로 대두되었다. 다시 말해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발표된 전례헌장은 각국에 맞는 미사와 성가를 발전시키는 교두보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바티칸공의회헌장의 발표는 한국 가톨릭교회음악연구가들이 한국적 성가에 관하여 연구하는 것을 활성화시켰다.
한국가톨릭음악에 관한 연구는 1950년대부터 수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나 지금 나와있는 연구물들은 대개가 1980년대 이후의 것들로 1980년대 이전까지의 연구물은 수적으로 극히 빈약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1980년대 이후의 연구물들은 이전의 연구결과물들에 비해 기존의 자료들을 좀 더 정리하고 있고, 보다 더 객관적으로 현상과 자료를 이해하고 논의하고 있어, 좀 더 발전된 연구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가톨릭음악연구 초기에는 가톨릭 음악이 한국에 전래된 경로와 그것과 관계된 가톨릭음악수용사와 그 역사에서 큰 역할을 했던 몇몇 인물들을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연구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교회역사 초기에 불려졌던 천주가사의 연구도 이러한 흐름들과도 관련되어 이루어 졌다. 천주가사에 관한 종교적, 문학적 관점의 연구는 음악적 연구이전에 벌써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천주가사에 대한 실질적 음악연구의 시작은 구전하던 천주가사가 채보된 1980년대부터였다. 그리고 좀 더 본격적인 천주가사의 연구는 1990년대에 들어서 더욱 활발히 행해졌고, 관심도 증대되었다.
바티칸공의회 이후로 한국가톨릭음악에 가장 핵심적인 주요과제로 대두된 토착화의 문제는 학위논문과 각종 정기간행물과 비정기간행물을 통해 발표된 일반논문들, 그리고 심포지엄 등을 통해 다루어졌다. 토착화의 문제는 방법의 문제, 그리고 그 방향성과 관련하여 여러 학자에 의해 가장 광범위하게 다루어진 논제였으며, 지금까지도 활발히 거론되고 있는 논의거리다.
또한 한국가톨릭음악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특히 1994년과 1996년에 각각 I과 II로 나누어 출판된 {한국가톨릭음악사료집}은 한국가톨릭음악계에 도움이 될 만한 각종 정기간행물의 기사글들을 목록화한 영인본이다. 이것은 가톨릭교회음악의 흐름을 한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유일하고 방대한 저작물로 평가된다. 그외의 연구물과 자료들로는 성가집과 성가대 그리고 각종 전례음악에 대한 논문과 기사글이 있다. 성가집에 대한 연구는 성가의 역사적연구와 함께 주로 연구되었으며, 천주가사와 토착화에 관한 연구물들을 제외하고는 가장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분야이다.
200여년이라는 한국가톨릭역사에 비해 한국가톨릭음악연구는 많이 미비한 편이다. 우선 연구를 뒷받침할만한 자료들이 잘 정리되어 있지 않으며, 그 자료들의 사료로서의 가치가 잘 평가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산발적으로 여러 장소에서 발견된 자료들을 한 곳으로 모아, 손상되지 않도록 보관하고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역사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연구를 위한 1차적인 중요한 근거로 삼아서, 좀 더 체계적인 연구들의 밑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연구들을 활성화하여 많은 연구물들이 축적되어야 한다.
어쨌든 이러한 체계적인 연구에 도움을 주기 위해 지금까지 연구된 각 단행본과 논문(학위논문, 일반논문)과 기사목록에 해제를 덧붙여 제시하도록 한다. 각 연구물의 목록들은 다음에서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정리했는데, 이것은 단행본/논문(학위논문, 일반논문)/기사이다. 이런 방식으로 분류한 이유는 주제별로 각 연구물들을 분류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각각의 연구물들은 대부분 한 가지 논의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기 보다는 한 가지 논의를 중심으로 언급하면서 광범위하게 다른 논제들을 함께 다루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명확하게 분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따라서 글의 종류에 따라 단행본과 논문, 기사로 나누어 분류했다.
단행본으로 출판된 것은 총 12권이다. 천주가사와 관련된 것이 4권(김옥희, 하성래)이고, 교회전례음악과 관련된 것이 2권(차인현, 김건정)이며, 사료집이 3권(임충신·최석우, 조선우 외)이다. 천주가사 관련 책 중 3권은 특히 최양업 신부의 연구와 밀접하다. 그레고리오성가에 관한 책은 3권(차인현, 한국순교복자수도회, 돔 외젠 까르딘)이 출판되었다. 이 책들은 그레고리오성가에 대한 자세하고 집중적인 설명을 실은 책으로 보인다. 그리고 전례음악에 관한 책 중 {교회전례음악}(김건정)은 전례음악에 관한 개괄적인 설명을 실은 책이다.
논문은 크게 학위논문과 일반정기간행물에 게재되어 발표되었던 일반논문으로 나뉘어진다. 학위논문의 경우 가톨릭성가와 성가집에 관한 논문(장안숙, 홍선희, 유정숙, 박해숙)과 토착화와 관련한 논문이 많다. 또한 천주가사에 관한 논문(최필선), 가톨릭음악과 관련한 청소년 교육에 관한 논문(김용희), 성가대활용에 관한 논문등이 그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미사곡에 관한 논문은 4편이 있다. 특히 이문근 미사곡의 분석논문이 2편인데 토착화의 요소를 찾아내는데 주안점을 두고 분석한 것(김은주)과 그레고리안성가의 음악적 요소를 분석하고 그것과 연관시켜 음악요소를 분석한 것(강민주)으로 두 논문은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그 외에 국악미사에 관한 것(조수영)과 인데, 한국에서 미사곡의 변화과정과 현황을 다루고 있는 논문(윤선민)이 있다. 국악미사를 분석한 논문에서는 최초의 국악미사곡인 강수근 곡을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전례음악에 직접적으로 초점을 맞추진 않았지만 바티칸공의회를 기준으로 대구가톨릭음악에 초점을 맞추어 전개시킨 논문(전민정), 미사에 사용되는 전례경에 관한 논문(김영미)이 있다.
학위논문을 제외한 일반논문은 한국가톨릭계의 모든 정기, 비정기 간행물을 중심으로 주로 발표되었다. 구체적으로 {경향잡지}, {사목}, {전망}, {교회와 역사}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일반논문들은 신학관련간행물에 기재된 논문이기 때문인지 전례음악에 관한 문제를 다루면서도 깊이있게 음악적 논의를 전개하기보다는 토착화의 정당성을 신앙적, 영적으로 주장하고 그 당위성이나 필요성을 주장하는 수준에만 그치고 있어 실질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해주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차인현신부, 박기현신부의 글들에서는 좀 더 음악적으로 어떻게 한국화를 진행시킬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실천적인 측면에서 비교적 심도있게 전개시켰다. 그리고 좌담회 보고글(1988)에서도 그동안의 논의를 한눈에 조망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일반논문중에서는 신학관련정기간행물이 아니라 전문음악학술지를 통해서 발표된 것들도 있다. 조선우의 논문들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천주가사를 비롯 성가집의 역사, 교회음악의 역사적 조명, 그리고 토착화등 교회음악전반에 걸쳐 객관적인 자료들이 뒷받침된 연구물들이 나오고 있다.
논문들이 논의거리로 제시된 주제를 깊이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신문에 게재된 기사는 일어난 사건이나 현상들을 있는 그대로 먼저 제시하여 논의거리가 활성화될 수 있는 바탕을 만든다. 따라서 신문에 게재된 기사글은 한국가톨릭음악의 현황을 분석하는데 중요한 논제들을 제공할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된다. 여기서는 {가톨릭 신문}에 기사화된 글들을 중심으로 수록했고, 특히 연재로 기사화되어 한국 가톨릭교회음악전반에 관해 문제제기에 도움이 되는 글들을 골라 이것은 '특집기사'라는 항목으로 따로 분류했다. 그리고 간단한 일반기사들은 그 목록이 {한국 가톨릭교회음악사료집}(부산: 세종출판사)에 약1930년대에서 1993년까지는 이미 제시되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일반기사들중에서도 1957년부터 현재까지의 국악미사와 토착화에 관련한 가톨릭신문 기사목록들만 '일반기사'라는 항목아래 따로 분류하여 제시하였다. 왜냐하면 국악미사나 토착화현상들과 관련한 기사들은 한국가톨릭음악계의 화두인 토착화양상을 면밀히 짚어볼 수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한국가톨릭음악에 대한 연구는 아직 불모지인 만큼 좀 더 전문적으로 다각적인 방향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천주가사연구, 토착화의 연구, 성가와 성가집의 연구, 부분적으로 한국가톨릭음악의 사(史)적 연구 등이 행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이 비체계적이고 산만하게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좀 더 총체적인 조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존연구에서 누락된 문헌적, 현상적 자료들을 보완하여 부족한 연구들을 메우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더 세부적인 연구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기초작업이 이루어지고 나면 앞으로의 연구들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풍부하게 생산되며 발전할 수 있으리라 본다.
II. 목록과 해제
1) 단행본
김건정. {교회전례음악} 서울: 가톨릭출판사, 1987.
교회전례음악에 관한 개괄적인 개론서이다. 종교와 음악의 근원적 개념부터 접근하면서 각 종교음악종류의 명칭을 비롯해, 가톨릭음악사와 한국가톨릭음악사, 전례음악에 대한 설명을 다루고 있다. 또한 실질적인 성가대육성방안과 성가대운영과 관련한 문제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김옥희. {최양업신부의 생애와 사상} 한국가톨릭 문화문고3, 서울: 계성출판사, 1986.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사제가 된 최양업신부는 기본적인 사목활동 외에도 적지 않은 저술활동을 하였다. 특히 한국인의 전통사상과 서민의식에 알맞게 가톨릭의 교리를 설명하여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4·4조의 가사체로 된 '천주가사'를 직접 저술하여 가톨릭의 대중화와 초대 한국 가톨릭교회음악의 실체를 남긴 업적으로 유명하다. 이에 저자는 최양업신부의 사상·의식세계를 알아보고 그것이 한국의 문화 흐름 속에서 어떠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있다. 머리말, 최양업(토마스)신부의 약력, 부록으로 최양업신부의 서간(I)이 그것이다. 최양업신부의 약력에는 1. 최양업신부의 생애와 가족관계 2. 최양업신부의 귀국과 고군산도 사건 3. 최양업신부의 포교활동과 그 사상을 담고 있고 부록에는 1842년 마카오에서 레그레죠아신부에게 올린 1신부터 1849년 상해에서 역시 레그레죠아신부에게 올린 6신까지의 서간을 실었다.
_____. {최양업신부의 천주가사 I} 한국가톨릭 문화문고5,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6.
천주가사는 가톨릭의 기본적인 교리를 간단하고 명확하게 간추려서 일반 신자들이나 아동, 부녀자들이 쉽게 익힐 수 있도록 만든 4·4조의 가사문학이자 성가이다. 교회음악 분야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졌고, 한국가톨릭의 초대교회음악으로 높은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머리말, 천주가사에 관한 사적 고찰과 '향주삼덕가(向主三德歌)' '뎨셩가(提醒歌)' '칠성사가(七聖事歌)' '사향사(思鄕歌)'를 실었다.
_____. {최양업신부의 천주가사 II} 한국가톨릭 문화문고6,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6.
천주가사는 가톨릭의 기본적인 교리를 간단하고 명확하게 간추려서 일반 신자들이나 아동, 부녀자들이 쉽게 익힐 수 있도록 만든 4·4조의 가사문학이자 성가이다. 교회음악 분야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졌고, 한국가톨릭의 초대교회음악으로 높은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머리말, '선죵가(善終歌)' '사심판가(私審判歌)' '공심판가(公審判歌)' '삼셰대의(三世大義)' '텬당이라' '디옥가(地獄歌)' '십계가(十戒歌)'를 실었다.
돔 외젠 까르딘. 이창룡 역. {그레고리오성가 기호학} 부산: 세종출판사, 1996.
기호란 객관적인 해석을 위해 근본원리를 추론하는 것으로 존재 의미가 있다. 그레고리오성가의 기보체계의 정교함을 단순한 역사적 사실로 나열하지 않고 직접 실천함으로써 음악적 바탕을 단단하게 한다. 바티칸판의 네우마 기호와 다양한 그레고리오 기호와 그 명칭을 실례를 들어가며 풀이하고 있다.
임충신·최석우 역주. {최양업신부 서간집}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조선우·최필선 편. {한국 가톨릭교회음악 사료집 I} 음악학 총서2, 부산: 세종출판사, 1994.
이 사료집은 한국의 가톨릭교회음악이 어떻게 생성·수용되었고, 한국 교회 안에서 어떠한 역할과 기능을 행사하였으며 우리나라의 서양음악 수용사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며 발전해 왔는지 한국 가톨릭교회음악과 교회음악관련 문화전반의 과거와 현재를 포괄적으로 파악하고자 편찬되었다.
한국 가톨릭교회음악 관련의 다양한 업적들 중 거의 모든 1차 자료를 섭렵한 방대한 저작물이란 점에서 독보적이다. 제1권은{경향잡지},{가톨릭청년},{가톨릭신문},{사목},{전망}의 다섯 가지 교회 정기간행물에 나타난 모든 교회음악관련 기사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1부 사료목록은 조사한 모든 음악관련 기사들을 도표 안에 연도순으로 정리하였으며, 2부 원전제시는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생각되는 글 585개를 선발하여 원전대로 복사하여 실었다.
조선우·최필선·서우선·주은경 편. {한국 가톨릭교회음악 사료집 II} 음악학 총서3, 부산: 세종출판사, 1996.
1994년 발간된 {한국 가톨릭교회음악 사료집 I}의 직접적인 후속작업이다. 11종류의 교회 비정기간행물을 대상으로 거기에 게재된 교회음악관련 모든 기사를 연도순으로 목록화한 단행본. 이 사료들은 1878년부터 1993년까지를 포괄한다. 사료목록, 원전제시, 색인의 세 부분으로 짜여져 있다. 사료목록은 조사한 모든 교회음악관련 글들을 연도순으로 정리한 것이며, 원전제시는 이 목록 가운데 사료적 가치가 있는 450개의 글들을 엄선하여 원전 그대로 복사하여 제시했다. 색인은 {한국 가톨릭교회음악 사료집 1+2}를 망라했다. 연주된 곡목·작곡가와 연주가·연주회와 연주단체를 독립된 대항목으로 나누어 정리했다.
차인현. {그레고리오성가} 가톨릭 신학총서9/전례음악1, 서울: 가톨릭대출판부, 1991.
가톨릭교회의 전례음악이며 현대음악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전문적인 연구서라기보다는 그 중요성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착안하여 음악인과 일반인들이 무리없이 접할 수 있도록 꾸민 단행본. 저자가 가톨릭대학 신학부에서 강의한 그레고리오 성가 및 다른 데서 강의한 것을 보태고 보완하여 만들었다.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한 연구는 학파에 따라 많이 다르다. 저자가 채택한 방법은 프랑스 솔렘에 있는 셍-피에르 수도원(베네딕도 수도원)의 학자들이 연구한 것이다. 머리말과 일러두기, 제1장 그레고리오 대교황과 그레고리오 성가의 개관, 제2장 그레고리오 성가의 기보법: 노따와 네우마, 제3장 그레고리오 성가의 음계, 제4장 그레고리오 성가의 리듬과 지휘법, 제5장 그레고리오 성가의 음악적 형태, 제6장 그레고리오 성가의 시편창법, 제7장 그레고리오 성가의 반주법, 제8장 미사, 성무일도와 그레고리오 성가, 부록에는 라틴어 발음법과 전례력 및 L.U, G.R의 목차를, 끝으로 색인을 덧붙였다.
_____. {한국 천주교회와 성가} 서울: 가톨릭출판사, 1991.
저자가 그 동안 필요에 따라 써 놓았던 논문과 단상을 한데 모아 사제서품 25주년 기념으로엮어서 만든 단행본. 1부격인 한국 천주교회와 성가에는 11편의 논문이, 2부격인 사목단상에는 13편의 글들이 실려있다. 11편의 주제들은 한국 천주교회의 발자취를 학자적 시각에서 논술한 역사서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이 주제들은 각각 최초로 발표·게재된 문헌에서 해제하였으므로 참조바람.
하성래. {天主歌辭 硏究} 인천: 성황석두루가서원, 1985.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재정리한 단행본이다. 천주가사란 한국에 천주교가 도입된 이후 전교를 위하여 혹은 자신의 신앙고백을 위하여 가사문학의 형식으로 노래한 시가를 말한다. 작품을 논하기에 앞서 배경론으로 동·서사상의 만남과 서학의 충격, 천주교의 도입과 천주가사의 출현을 고찰하고, 그 사이 창작된 천주가사를 한국 천주교회의 대 박해사건과 연관지어 3기로 나누어 고찰하고 필자가 그 동안 수집한 천주가사 목록을 제시하였다.
한국순교복자수도회. {그레고리오성가 이론} 서울: 태림출판사, 1981.
2) 일반논문
교황청예부성성. "거룩한 전례안에서의 성음악(1)." {사목} 2,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1967. 160-165쪽.
교황청예부성성. "거룩한 전례안에서의 성음악(2)." {사목} 3,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1967. 133-138쪽.
바티칸공의회에서 발표된 헌장의 세부훈령들을 번역해 놓은 글이다. (1)과 (2)로 나누어 '사목'에 연재되었다.
교회사연구소. "천주가사." {교회와 역사} 66,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1; {한국 가톨릭교회음악사료집}2, 147쪽 재수록.
한국교회사연구소의 한국교회사연구입문 51회 자료로 1장의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천주교 신앙을 내용으로 하고 재래의 4·4조 가사형식을 취한 천주가사는 조선왕조 후기 대중가사 형식을 채용했다는데서 벌써 그것이 대중교화의 방법으로 제작되었음을 말한다. 천주가사는 천주교교리의 토착화, 교리교육의 심화, 현대성가와 현대시의 발전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으므로 한국교회사에서 차지하는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그런 점에서 천주가사의 연구과제는 작가와 연대를 정확하게 밝히는 일과 본문비판의 일이 남아있다.
김대붕. "한국 천주교회의 성가집에 관한 고찰." {한국교회사논문집 I}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635-648쪽.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으로 씌어진 논문. 1945년 해방 후 한국에서 발간된 성가책 중 1956년판 통일 가톨릭 성가집을 가지고 외형적으로 분석하였다. 서론으로 해방후의 교회음악 활동을 개괄하고 통일 가톨릭 성가집 내용의 출처를 밝히는데 주력하였다.
김동욱. "서교 전래후의 천주찬가." {인문과학} 21 서울: 연세대출판부, 1969. 171쪽.
천주가사를 음악의 한 종류로 보고 천주찬가라 규정하였다. 유교의 제향, 악장과 불교의 게찬, 향가 및 불교가사, 기독교 찬송가와 같은 종류로 보되 이에 대응하여 천주찬가(讚歌)라 하였던 것이다. 최양업신부의 '사향가' '천당가' '지옥가' '십계강론'의 4편의 천주가사가 발표되었다.
김승주. "미사전례 각 부분의 의미와 성가." 교구설정 40주년 기념 {본당 성가대 발전을 위한 심포지엄}, 부산: 부산교구청, 1997. 23-27쪽.
논자는 가톨릭 사제로서 전례성가의 절차와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성가대는 성가곡의 순서를 전례에 맞게 사용하고, 전례와 최대한 일치되는 곡들을 선정해주기를 촉구한다. 발제라기보다는 강론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전례 각 부분의 의미와 성가의 우선 순위를 장엄미사, 창미사, 평미사의 3단계로 구분하여 교회지침대로 따를 것을 강조했다.
김약슬. "가톨릭 초기성가에 대하여." {문화비평} 1970. 128쪽.
천주가사의 정의를 '찬가나 교리를 당시의 가사장르에 얹어 부르는 것'이라 하여 초기 천주가사연구에 있어서 명칭의 논란에 한몫을 했다. 천주가사가 후대에 작곡되어 성가로 불리기도 하였지만 작곡보다는 가사창작의 측면에서 음악적 연구를 하였다.
김진균. "한국교회와 음악." {사목} 38,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1975. 108-112쪽.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문제점과 개선책에 관한 글이다. 필자는 글에서 교회의 합창음악에대한 인식과 신자개창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아야하고 유능한 지도자의 발굴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또한 일정한 예산의 뒷받침이 있어야하고, 한국성가와 그레고리안성가의 활성화를 강조한다.
김진소. "천주가사의 기원과 역사." {교회와 역사} 20,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77.
한국교회사연구소 제11회 월례발표회의 글이다. 천주가사의 기원, 고대성(작품연대), 친저성(작가)으로 세분하여 천주가사의 정의와 교회사적, 신앙적 가치를 역설하였다. 천주가사는 골동품에 대한 호기심이어서는 안되며, 오늘날 한국신학이 번역신학이 아닌지, 복음의 선교가 서구문화의 선전이 아닌지 반성의 계기를 던져주고 있음을 시사했다.
_____. "피악수선가." {전망} 28, 광주: 광주가톨릭대학, 1975.
1903년에 제작되었고 필사본으로 전해 오는 작가 미상의 천주가사이다. 이를 필자는 신앙적, 사상사적으로 연구하였다.
_____. "천주가사연구." {교회사연구} 3,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1.
_____. "천주가사의 사상연구 시론." {교회와 역사} 87/88,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제45회 월례발표회 요지, 1982; 최석우신부회갑기념 한국교회사논총 1982. 279-310쪽 재수록.
민중의 의지와 이해가 담겨있고 실제로 살아온 것으로서 천주가사는 부정적인 교리를 대중들에게 소화섭취시키는 생활적응의 상비약 구실과 대중교화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를 사상적 차원에서 연구한 논문. 이끔말, 천주가사의 연원(사상반성, 전사, 사상전개의 이원현상), 사상전개(시대인식, 민중의식, 공동체 의식), 맺음말로 이루어져있다.
남궁요열. "양악의 도입과 엑케르트의 활동." {교회와 역사} 86,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한국 가톨릭교회음악사료집 II} 151쪽 재수록.
한국교회사연구소 제33회 간담회 요지. 이 땅에 서양 곡조가 불리우게 된 것은 1871년경 외국 선교사와 외국 군함의 군악대가 상륙하여 연주한 것으로 비롯되지만 우리가 양악을 시작한 것은 1901년 독일인 프란츠 엑케르트가 조선군악대 지휘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저자는 엑케르트가 지휘한 조선 군악대의 생멸과 엑케르트의 약력을 소개하고 있다.
J.라찡거. "전례와 교회음악." {사목} 113,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1987. 67-80쪽.
전례와 교회음악에 대해 신학적이고 개념적인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박기현. "한국 가톨릭교회음악의 문제점." {전망} 31, 광주: 광주가톨릭대학, 1975. 120-132쪽.
이 논문에서 필자는 교회음악의 정의를 내리기 위해 전례헌장과 관련하여 성음악의 면모를 살펴보고 한국 가톨릭교회음악의 오늘날 상황을 진단해 본다.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문제점들을 진단해 보고 그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_____. "전례성가의 토착화." {전망} 63, 광주: 광주가톨릭대학, 1983. 44-67쪽.
필자는 본 글에서 먼저 한국천주교회전례성가의 실태를 음계, 노래구성요소, 말고곡의 연결관계를 3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그리고 전례성가의 정의와 역할특성을 통해 전례성가를 먼저 설명한 다음 토착화작업에 임하는 올바른 자세를 말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토착화의 의미와 토착화작업의 현실적 문제, 전례성가의 토착화작업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_____. "전례성가의 작곡자론." {전망} 64, 광주: 광주가톨릭대학, 1984. 67-81쪽.
본 논문에서는 전례성가의 작곡자의 역할과 자질에 대해 언급하고 작곡상의 방법론을 설명하고 있다. 전례성가의 작곡자는 뛰어난 예술성을 발휘하면서도 동시에 전례라는 목적을 위한 봉사자이며 그런 이유로 신앙심과 전례지식, 사명감이 있어야한다고 말한다.
방삼민. "전례성가와 성가대의 위상." 교구설정 40주년 기념 {본당 성가대 발전을 위한 심포지엄}, 부산: 부산교구청, 1997. 5-7쪽.
현 가톨릭성가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신자들의 제창이 강조됨에 따라 성가대의 위상과 역할이 미진해졌다. 이는 공의회의 가르침을 잘못 받아들인 것으로서 논자는 공의회의 참 지침을 재점검하고자 하였다. 1. 성가대 변천의 역사 2. 성가대의 역할 3. 성가대의 편성과 배치 4. 성가대의 교육과 자세로 구성되었다.
백남용. "음악사 안에서의 교회음악의 역할." {한국의 교회음악 심포지엄}, 서울: 고려대 인촌기념관, 1993. 53-82쪽.
전체적으로 서양 교회음악사와 한국 교회음악사를 조명하는 논문이지만 근저에는 인간생활 전체에서 교회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교회음악만이 절대권력을 누릴 수 없음을 시인하고 세속음악에도 세례를 주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제1부 서양음악사에 있어서의 교회음악의 역할, 제2부 한국 음악사 안에서의 교회음악의 역할로 고찰하여, 서양 교회음악에 메씨앙 같은 세례자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 전통음악에 세례를 줄 수 있는 음악사도들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_____. "한국전통음악과 그레고리오 성가." {사목} 165,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1992. 31-46쪽.
필자는 글에서 성음악분야에서 우리의 옛것도 살리고, 이미 받아들인 남의 것도 살리는 둘의 접점찾기를 강조하며 그 방법을 모색한다. 특히 필자는 본문에서 종교적, 음악적 측변에서 그레고리오성가와 한국전통음악을 비교한다.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선법 및 음계나 리듬을 나누어 비교하고 세가지 결론을 제시하면서 글을 맺는다.
손상오. "현 전례와 전례음악." {사목} 49,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1977. 62-71쪽.
전례음악에 대한 신학적 성격을 설명해 놓은 글이다. 전례쇄신에 대한 문제제기로 시작하고 있다. 본론에서는 전례음악의 용어에 대해서 먼저 서술하고, 음악의 전례적 의미 그리고 음악의 전례적 상황에 대해 서술하며, 쇄신되어야 할 과제를 다시 한번 강조하며 마무리하고 있다.
_____. "교황들의 문헌에 비추어 본 성음악의 현실적 문제점들 I, II, III." {전망} 광주: 광주가톨릭대학, 1980 - 1981.
필자는 먼저 시대별로 영향을 끼쳤던 문헌들을 먼저 살펴보고, 음악과 전례, 음악과 언어, 전례행위자의 음악적 기증, 작곡자와 전례, 악기사용, 현대 전례음악의 특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다. 전례음악에 관한 포괄적인 정리를 담은 글로 I, II, III으로 나누어 전망에 연재되었다.
이문근, "교회음악(교회음악사)." {가톨릭 청년}, 1956.4-1958.4 총25편.
이문근신부가 3년간에 걸쳐 음악강좌 시리즈로 연재한 25편의 글모음이다. 서양음악사 전체에서 교회음악에 비중을 두고 썼으며 일반독자들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일반음악사의 시대구분법을 따르되 각 시대에는 요점이 될만한 주제를 붙여 교회음악의 공시적 접근을 도입하고 있다.
이문근·성두영. "교회음악의 토착화에 대한 찬반." {경향잡지} 65, 1973. 20-32쪽; {한국 가톨릭교회음악사료집 I}, 374-380쪽 재수록.
경향잡지가 4월 특집으로 엮었다. 이문근신부는 「교회음악의 소위 토착화에 대하여」란 주제로, 성두영은 「교회음악사에서 본 한국 성음악의 토착화 고찰」이란 주제로 찬반의 논쟁이 뜨거웠던 70년대 전반기의 상황을 엿볼 수 있다. 주제 토론에 앞서 성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부분 발췌하였다. 이문근은 일반 음악사에서 '새 것'의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내고 이어 바오로 6세 교황의 '교회의 뜻'을 밝히고, 비오 10세 교황의 '교회음악을 위한 자의교서'를 해석하여 오늘까지 교회의 가르침을 논하면서 토착화를 못할 이유가 없음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토착화를 외국인이 먼저 부르짖었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다고 했다. 성두영은 전례와 성무에 있어서 성음악의 중요성을 논하고 그레고리오 성가의 복원도 그러한 차원에서 이루어졌음을 상기해야 한다고 했다. 토착화는 하되 종교음악과 전례음악의 최후의 보류는 지켜져야 하므로 전통음악(그레고리오 성가와 같이) 속에서 종교음악의 토착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철수. "성가대 활성화를 위한 문제점과 해결책." 교구설정 40주년 기념{본당 성가대 발전을 위한 심포지엄}, 부산: 부산교구청, 1997. 9-13쪽.
가톨릭교회의 성음악이 과거에 비해 활성화되지 못하는 이유를 문제로 제기하고 그 해결을 위한 방법을 모색한 글. 1. 총론 2. 단위 본당에서의 성가대의 올바른 역할 3. 성가대 운영의 이상 4. 이상을 실천하는 과정 5. 단위 성가대의 활성화 방안으로 구성되었다.
조선우. "한국 가톨릭성가의 어제와 오늘." {한국음악사학보} 14, 한국음악사학회, 1995. 35-68쪽.
한글 성가집과 한글 성가의 역사와 현재를 조명해 보는 논문. 이 논문은 한국 가톨릭성가의 차원을 넘어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와 독일 분도회의 선교사들을 통해서 서양음악이 한국에 수용되는 과정을 연구하는 의미도 갖는다. 초대성가인 천주가사 3편(성탄가, 천당가, 주일가)이 저자에 의해 새로 채보되었고, 1911년부터 1990년에 이르기까지 한국 가톨릭 성가집의 출판연도별 목록과 낱개 성가집에 대한 기원, 출처, 의미 등을 고찰하였다.
_____. "독일선교사를 통한 한국의 서양음악 수용사." {이강숙 회갑기념논문집} ,서울: 민음사, 1996. 657-715쪽.
저자는 한국 서양음악의 수용이 실학자들에 의한 것과 외국인 천주교 선교사들에 의한 두 길로 나누어진다고 주장한다. 선교사들은 1794년 조선에 입국하여 신자대중에게 그레고리오 성가와 서양식 한글성가를 가르쳤으며 다양한 성가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목차는 초기 한국 천주교 교회음악의 역사 개요, 민족성가인 천주가사와 새로운 서양식 한글성가와의 마찰 및 극복, 그레고리오 성가가 교회에 공식적인 전례음악으로 수용되기까지의 고찰, 새로운 한글성가들이 프랑스와 독일선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짐, 첫 한글성가들이 {가톨릭성가집}(1986)에 어떤 경로로 전승·수용되었는지 도표화함, 그리고 분석의 순서로 서술하였다. 이 글은 특히 저자가 1994년 한국에 선교사를 파견했던 독일, 스위스, 미국 선교수도원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음악관련 문헌들을 찾아보기 위해 직접 현지조사를 하는 수고를 감당한 점이 돋보인다. 이외에 초창기 한국 성가 언급은 선교사와 선교수녀들의 각종보고서를 참고하였다.
_____. "교회음악의 한국화 논의." {한국 가톨릭 어디로 갈 것인가}, 서울: 우리사상연구소, 1997. 342-370쪽.
저자는 오늘날 한국 가톨릭교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교회의 한국화를 포기하거나 아직 한국화를 하지 못한데서 비롯되며 교회음악도 예외가 아님을 강조하면서 제1장 서론, 제2장 전례음악과 교회음악의 개념풀이, 교회음악의 기능과 목적, 종류, 생성 및 발전사, 초대교회와 교부들, 교황들의 칙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을 두루 살펴서 한국화의 정당성을 제시하기 위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제3장 한국화 개념을 토착화 개념과 비교하고 현재까지 토착화 개념 아래 이루어진 교회음악의 한국화 논의들을 연대기적으로 정리·요약·분석했다. 제4장 교회음악의 한국화를 위한 제언을 담고, 교회음악의 한국화가 이루어질 수 없었던 장애적 요소들을 분석했으며, 마지막으로 교회음악 한국화의 모델로 천주가사 성가를 제시하였다.
_____. "한국 가톨릭성가의 수용사." {역사와 사회} 서울: 현암사, 1997. 183-229쪽.
한국적 천주가사성가가 서양적 한글성가와 어떻게 마찰·극복되었고, 어떤 과정을 통해 그레고리오 성가가 한국교회의 공식적인 전례음악으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새로운 서양적 한글성가들이 1920/30년대 프랑스와 독일 선교사들에 의하여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고찰한 논문. 그리고 이 한글성가들이 어떤 경로로 그리고 얼마나 현재의 {가톨릭성가}에 전승·수용되었는지를 분석하고 도표화하였다. 머리말, 한국적 천주가사 성가, 그레고리오 성가, 새로운 한글성가, 한글성가의 수용사, 맺음말, 부록으로 참고문헌 및 성가관련 연구물이 수록되어 있다.
_____. "가톨릭음악의 역사와 현재--가톨릭성가를 중심으로." {예술문화} 대구: 계명대, 1999. 65-98쪽.
한국가톨릭교회의 성가집들을 살펴보고 가톨릭성가의 발전사와 토착화의 흐름을 논의한 논문이다. 가톨릭 성가집을 선교사들의 한글성가집과 한국인이 발간한 한글 성가집으로 나누고 선교사들의 한글성가집도 프랑스 선교사들과 독일선교사들에 의한 성가집을 각각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성가는 그레고리오성가와 시편성가, 천주가사를 나누어 살펴보며, 수용 한글성가와 창작 한글성가를 더 자세히 구분하여 논한다. 덧붙여 토착화에 관한 논문과 심포지엄논문을 요약하여 현재까지 논의된 한국화논의들을 언급한다. 그리고 한국화를 위한 제언으로 결론을 맺고 있다.
_____. "성가, 한국의." {가톨릭 대사전} 7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99. 4499- 4503쪽.
성가의 생성경위와 사용범위, 외형적 형상, 역사, 교회에서의 위치 등을 기술한다. 주목할 점은 서술대상을 "가톨릭 음악세계의"항목과 구분하기 위하여 "한국의 가톨릭 성가"로 제한하였다. 서술목차는 1. 그레고리오성가의 수용, 2. 천주가사의 음악양식과 의미, 3. 서양식 한글성가의 한국화이다.
_____. "성가대, 한국의." {가톨릭 대사전} 7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99. 4503 -4505쪽.
교회전례에서 성가대의 구성, 장르와 편성에 따른 구분, 교회안에서의 역사를 개괄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비중을 한국교회안에서 성가대의 역사, 시기별 성가대의 역할과 임무를 서술하는 것에 있다. 아울러 성가대의 반주단체, 즉 오르간과 악대(樂隊)에 대한 설명도 함께 했다.
_____. "성가집, 한국에서의." {가톨릭 대사전} 7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99. 4510-4515쪽.
한국 가톨릭교회성가집의 역사와 변천을 다룬 항목. 1924년 최초의 성가집 {죠선어 셩가}로부터 1986년 {가톨릭 성가}가 출판되기까지를 다루었다. 이들은 크게 선교사들의 한글 성가집과 한국인들의 한글성가집으로 나누어진다. 선교사들의 한글 성가집은 서울·대구교구 선교사들의 한글성가집, 원산·연길교구의 선교사들의 한글 성가집으로 구분하여 서술하였고, 한국인들의 한글성가집은 1948년 이문근 신부가 발행한 {가톨릭성가집}부터 다루었다.
_____. "시편성가." {가톨릭 대사전} 8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발행예정).
시편성가의 용어, 정의, 역사, 구조, 노래방식, 한글시편성가로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특히 한글 시편성가는 임남훈 수녀, 최병철 등 소수 가톨릭 작곡가의 관심속에 창작되다가 1987년 손상오 신부의 시편성가로 이어졌는데, 이것은 미사전례용 첫 한글 시편성가집으로 음악적으로도 한국어법을 모색하고 있으며 한국적 시편성가의 구조와 형식에 대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주체적 예술관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필자는 평가하였다.
차인현. "조선교구와 전례음악." {새벽} 1981; {한국 천주교회와 성가}, 9-13쪽에 재수록.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을 기념하여 신앙 선조들이 부르던 성가의 발자취를 더듬고 현행 성가의 문제와 미래를 구상해보고자 하였다. 천주가사로부터 가톨릭성가집의 변천사를 축으로 간단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다.
_____. "이문근신부의 생애와 음악." {최석우신부 회갑기념 한국교회사논총}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549-579쪽; {한국 천주교회와 성가}, 14-44쪽에 재수록.
한국 교회음악의 초석을 닦은 보배로운 존재로 이문근신부(1918-1980)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발자취와 환경들을 더듬어 기록한 논문. 나아가 이신부의 생애와 음악을 기록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나온 한국 교회음악의 역사와 배경을 이해하며 앞으로 전개될 교회음악의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머리말, 서언, 이문근 신부님의 생애, 이문근 신부님의 음악, 맺는 말로 구성되어있다.
_____. "한국 천주교회의 성가와 성가집." {한국교회사논문집 I}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4. 477-501쪽; {한국 천주교회와 성가}, 51-77쪽에 재수록.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으로 씌어진 논문. 한국 천주교회음악의 발전사를 성가양식적 측면과 성가집의 변천으로 살펴보았다. 이끔 말, 초기한국천주교회의 성가, 그레고리오 성가의 전래, 초창기 성가집의 발행, 해방이후의 성가집 발행, 맺는 말로 구성되어있다.
_____. "전례시 부적당한 성가." {경향잡지} 1985. 4; {한국 천주교회와 성가}, 185-188쪽에 재수록.
'신학자가 답한다'란에 전례음악에 대해 일반인이 질문하고 필자가 답한 내용을 실은 글이다. 성음악의 역할과 전례시 가려야 할 음악내용을 묻는 질문자에게 필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의 지침을 근거로 성음악의 역할을 답하고, 주교회의에서 결정한 통일성가집의 작곡 및 선정기준을 제시함으로서 질문에 응수했다. 가사와 말씀과 멜로디의 일치를 권장하고, 한국적이며 대중적이되 품위를 갖출 것과 되도록이면 주례자, 신자, 성가대가 교창하도록 권장한다.
_____. "한국에서의 프랑스 교회음악과 성가의 수용." {교회사연구} 136,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7. 307-327쪽; {한국 천주교회와 성가} 96-151쪽에 재수록.
1831년 조선교구가 설정되고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가 사목을 담당한 이래로 한국교회와 프랑스교회는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따라서 한국 교회음악은 프랑스 교회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터이므로 그레고리오 성가의 교육활동과, 성가집 발간에 영향을 준 프랑스 성가집 및 기타 성가집, 일반 오르간과 파이프오르간의 도입이란 소제로 한불 교회음악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 별첨 1>에 프랑스 보댕신부의 약력과 교회음악사도로서의 자취를 담았고, <별첨 2>에 교회 정기간행물을 통하여 본 한국 천주교회의 교회음악활동을 연도별로 도표화한 것은 그 뒤로 제1차 자료의 중요성을 불러일으켜 {한국 가톨릭교회음악사료집}1+2의 발간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_____. "교회음악의 토착화." {사목} 115,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1988. 44-65쪽; {한국 천주교회와 성가} 45-50쪽에 재수록.
이 글은 1988년 토착화 연구기획위원회에서 개최한 '전례의 토착화'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의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심포지엄은 주제발표와 약정토론, 일반토론으로 이루어졌다. 주제발표는 차인현신부에 의해서 이루어졌는데 한국 가톨릭교회음악, 한국음악, 토착화에 대해 나누어 살펴보았다. 약정토론에서는 김종헌, 홍민자의 문제제기가 있었으며 일반토론에서는 좀더 다른 측면으로 본 토착화에 대한 논의들이 다수 나타났다. 토론전반에 교회당국의 제도적인 뒷받침의 필요성이 주로 논의되고 있다.
_____. "한국가톨릭음악." {가톨릭대사전}, 서울: 가톨릭출판사, 1985. 1251- 1253쪽; {한국 천주교회와 성가} 89-95쪽에 재수록.
한국에 있어서 가톨릭성가의 시작은 명례방에서 천주교집회가 열리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으나 본격적인 것은 1886년 한불조약 이후로 보는 것이 타당하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모국어로서의 전례가 가능해지면서 오늘날까지 한국 가톨릭성가는 통일된 성가사용을 위해 노력중이다. 1. 박해시대에 있어서의 가톨릭 성가 2. 성가집의 발간 시작 3. 광복 이후의 가톨릭 성가집으로 구성되어있다.
_____. "성음악의 토착화를 바라보며." {새벽} 49, 1980; {한국 천주교회와 성가}, 178-180쪽에 재수록.
필자가 프랑스에서 6년간 성음악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뒤 그의 포부와 과제를 서간문 형식을 빌어 표현한 글이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국악공부가 절실한 것과 박해시대 교우들의 성가 수집과 한국 성음악의 토착화가 큰 과제임을 토로했다.
최병철. "한국가톨릭음악, 이대로 좋은가." {사목} 210,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1996. 107-119쪽.
필자는 본 글에서 한국 가톨릭음악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고찰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각 항목을 나누어 전례음악과 라틴어의 관계, 제2차 바티칸공의회전례헌장의 의미. 한국 가톨릭교회음악의 현황, 교회구성원들의 전례음악에 관한 가치관에 대해 성음악의 전통보존, 계승 빛 창조적 미래상의 논의와 합의들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례음악의 가치에 대한 지침을 존중하고 계도하여야 할 계층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최필선. "초기 한국 가톨릭교회의 민족교회음악." {음악과 민족} 4, 부산: 민족음악연구소, 1992. 61-87쪽.
1960년대 중반에 행해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문화의 다원주의를 선포했는데, 교회 안에 서 다원주의에 대한 인식은 각 민족이 갖는 다양한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싹텄다. 한국 가톨릭교회음악에 있어서 전례의 문화 적응, 토착화는 천주가사로 대변되며, 전통언어와 선율, 전통사상이 잘 배합된 한국 천주교회의 유산이자 보배로써 공의회의 정신을 크게 앞당기고 있음을 강조한 논문이다. 머리말, 천주가사의 성립배경, 천주가사의 음악적 성격 및 민족교회음악적 의의, 맺는 말로 이루어져있다.
_____. "한국 가톨릭 樂隊연구." 부산: 교회사연구소, 1999. 5-20쪽.
19세기 말부터 일제시대까지 한국교회음악의 중심역할을 한 것은 악대라고 주장, 근대 교회음악에서 악대가 차지했던 역할과 비중을 높이 평가하였다. 가톨릭 악대는 전례와 각종행사, 음악회 등에 출연하면서 종교의식을 더욱 화려하게 장식하고 대외적으로는 전교의 효과를 거두었으며, 서정도·이문근신부 같은 교회음악인을 배출하는 창구가 되었다. 가톨릭교회음악 논문과 저서들 가운데 악대에 집중적인 최초의 고찰이다. 1. 들어가는 말 2. 한국 가톨릭악대의 형성(수용·구성·활동) 3. 맺는 말로 구성되어있다.
하성래. "정약전의 십계명가와 이벽의 천주공경가." {전망} 102, 광주: 광주가톨릭대학, 1973. 21-23쪽.
수많은 박해에도 살아남은 천주교회 창건기의 두 작품을 소개한다. '십계명가'는 서학수용의 과정에서 구약의 십계명을 차례로 노래하고 있으며, '천주공경가'는 한국 천주교회의 개척자 이벽의 천주교 신앙과 사상을 직접 살필 수 있는 유일한 문헌이다.
_____. "김낙호의 자신책가 소고 1,2." {사목} 36-37,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1974-1975.
저자가 자신의 신앙생활을 반성하며 꾸짖는 4·4조 172구의 긴 천주가사이다. 내용상 4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단락은 50평생 자신의 신앙생활을 반성하며, 2단락은 조석으로 자신의 신앙생활이 깊지 않음을 뉘우치며, 3단락은 천주께 드리는 자신의 묵상기도이고, 4단락은 성찰결과 두려움과 죽음을 예비한다. 1912년에 창작되었고 김동옥본에 실려있다.
_____. "김기호의 성당가 1,2,3,4." {사목} 39,41-43, 서울: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CK), 1975-1976.
1898년 명동성당 낙성식을 보고 그 기쁨을 노래한 천주가사이다. 11단락의 내용으로 나누어지며, 1903년 필사본으로서 홍방지거의 가첩 속에 전한다.
홍민자. "천주가사의 교회음악적 의의." {최석우신부 회갑기념 한국교회사논총},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311-324쪽.
'천당노래(베틀노래)'를 중심으로 천주가사의 교회음악적 의의를 살핀 논문. 최초로 천주가사를 채보하여 음악적 실체를 드러냈다. 서언에서 전례와 성가, 초기교회와 성가를, 본론에서 천주가사의 음악적 성격, 천당노래의 분석을, 결어에서 천주가사의 교회음악적 의의와 앞으로의 연구과제로서 구전 천주가사의 채보가 시급함을 역설하였다.
_____. "덕원 가톨릭성가(1938)." {교회와 역사} 86, 서울: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이 성가집은 1938년 덕원 성분도 수도원에서 발행한 성가집이다. 이 성가집이 나오기까지 저자 진도광(볼프람 피셔)신부는 사목자로서의 활동과 성가책 편찬이라는 이중부담을 안으면서도 여러 면에서 한국 교회음악에 새로운 장을 열어준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필자가 소개한 성가집의 외형적 내면적 분석으로 그 일면을 읽을 수 있다.
박헌일. "성가대 지휘자의 자질과 예우." 교구설정 40주년 기념 {본당 성가대 발전을 위한 심포지엄}, 부산: 부산교구청, 1997. 15-19쪽.
개정 통상문으로 된 새 미사곡의 보급을 계기로 성가대 활성화를 꾀한 내용이다. 97년 5월 부산교구내 교회성가대를 대상으로 설문지와 전화방문을 통하여 성가대의 현황을 파악했다. 현 성가대의 문제점을 일반 성가단원으로부터 도출하여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 돋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교회음악지도자의 자질과 관련된 것이었으며, 양질의 지도자를 영입하기 위해 교회는 이들에게 합당한 예우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한다고 주장한다.
3) 기사
(1) 특집기사
김진균. "교회와 음악예술." {가톨릭신문}, 1967.
가톨릭신문에 1-4회로 연재된 글. 서양음악문화의 모체는 로마 희랍 고대동방 국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많은 문헌적 기록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모른다. 가톨릭교회는 로마국교로 공인될 때까지 박해를 받았는데, 이 수난의 시기에 성가는 신앙의 무기역할을 했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서양예술음악의 발달 모체인 그레고리오 성가가 발생, 중세의 종교음악은 근세음악예술의 모체가 되었다. 음악적 성격은 현재 다른 나라들의 민요에서 보는 바와 같이 리듬과 멜로디로만 구성되어있다. 1편 서양예술음악의 시원, 2편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하여, 3편 다성음악의 발생, 4편은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주제로 하였다.
_____. "교회음악의 현실과 전망." {가톨릭신문}, 1974.
한편의 논단을 3회에 걸쳐 연재. 서양음악의 수용이 1890년 신교찬송가를 통해 유입된 이래, 한국 가톨릭교회음악은 교회의 무관심에 성음악 전술이 어두운 편이며, 가톨릭교회음악의 사회적 낙후성은 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합창단 해체 기운이 도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었으며, 성가지도자 강습 등 뒷받침이 시급함을 논했다.
손상오. "전례와 교회음악." {가톨릭신문}, 1975.
이 글은 저자가 파리에서 수학하고 있는 동안 신문사의 청탁을 받고 전례 기능에 있어서의 음악, 즉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전후한 전례음악의 변천단계와 그 문제점들을 논하고 있다. 음악은 전례의 시녀로 봉사역할을 다해야 하며, 전례의 무상은총을 표시해야 하며, 음악의 기능에 따라 전례의 성격이 달라지기보다는 전례기능에 부합한 음악형식을 채택해야 한다. 한국은 다양한 형태의 작품시도가 아쉬운데, 각 언어권마다 고유 창법연구가 시급하다고 한다.
차인현. "전례음악의 토착화." {가톨릭신문}, 1983.
전례음악의 중요성과 그 본질, 오늘의 문제점, 토착화의 내용으로 되어있다. 성음악은 전례의 필수적 요소이며, 그것은 오늘날 전례적·가톨릭적·대중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한국은 여러 종류의 성가집을 사용하여 사목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토착화와 관련해서는 전문기관을 통한 전문가 양성이 시급하며 다양성과 일치성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_____. "한국 가톨릭과 성음악." {가톨릭신문}, 1987; {한국 천주교회와 성가} 181-184쪽에 재수록.
한국 교회창설 200주년을 보내면서 그동안 걸어온 한국 교회음악의 과거와 문제점을 고찰하고 미래 교회음악의 방향을 재조명하여 새로운 복음화를 추구하고자 한국교회음악의 발자취,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으로 나누어 정리한 글이다. 공의회 정신으로부터는 전례성가의 필요성과 목적, 교회음악의 보존 육성, 한국 교회음악의 토착화 문화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를 짧은 필체로 논하고 있다.
(2) 일반기사
1957, 8, 25 민족음악의 전례적합성 토의 1957, 8, 25 제3회 교회음악회의
1960, 9, 25 그리스도 현양을 더욱 강조 1961, 4, 16 전례음악발전책
1961, 5, 28 미사루바 순수종교미사곡 1961, 7, 2 아악조의 성영곡
1962, 11, 11 전례를 우선, 토의하는 의의 1962, 11, 4 개전의 초점
1963, 5, 26 메디아똘 데이와 성음악정신 1963, 7, 14 미사에 대중곡
1964, 10, 25 우리말 미사 1964, 3, 15 우리생리에 맞는 성가
1965, 4, 25 째즈곡 창미사 1966, 10, 30 우리말 미사곡 작곡 마쳐
1966, 5, 29 암스텔담 전례 1966, 6, 5 민족악기 사용
1966, 6, 5 교회음악의 신장 1966, 7, 19 독일주교단서 미사중 째즈음악금지
1966, 9, 4 멕시코서 미사때 민요사용을 허가
1967, 7, 9 외래곡에 번역가사붙인 우리 성가의 문제점
1967, 9, 3 미사전례(1) 1967, 4, 23 성음악의 새훈령에 관한 소감
1967, 4, 23 신상직접환호응답함이 당연 1967, 9, 17 대중곡 기타사용 구약때부터 전례
1967, 9, 24 시골본당과 농악 1967, 9, 3 화란복고주의자들 라틴어 전례화를
1967, 9, 10 미사전례(2) 1969, 4, 13 재즈는 허용, 북은 금지해
1969, 8, 3 한국최초 성가디스크
1971, 1, 17 김진균작곡 우리말 미사곡 초연을 마치고
1973, 4, 8 장고가 울리는 미사 1973, 10, 28 교회성 음악 보존 강조
1983, 9, 11 민속놀이 통해 복음을 전한다 1983, 6, 5 교외음악의 새진로 보색
1983, 8, 21 천주교가 한국예술에 미친 영향-음악 1983, 10, 31 부산교구 공의회 제3총회 확정안
1983, 12, 11 대구 가톨릭 문화관 국악교실 개설
1983, 12, 18 교황방한후 가톨릭 문화전반 총정리
1984, 1, 28 서울대교구 종교음악원 건립키로 1985, 3, 24 창미사곡을 가야금으로 반주
1986, 2, 23 한국 가톨릭 음악의 토착화 방안 1986, 9, 28 미사전례를 우리 가락으로
1986, 11, 2 한국식 토착화 미사 봉헌 1986, 9, 14 전례음악의 진수
1986, 8, 31 우리 가요 알고 사랑하자 1986, 7, 13 판소리 성 김대건전
1986, 6, 8 한국 가톨릭 국악 협회 발족 1987, 9, 13 성심여대 성음악 연구소
1987, 2, 6 전례음악 활성화 시급 1987, 2, 1 이윤일 순교자 미사 국악기로 반주
1987, 7, 19 대구 종교 음악 연구소 개설 1987, 3, 8 전례음악 전문 서적 펴내
1987, 9, 13 대구 종교음악 연구소 개설 1987, 3, 1 서울 종교음악 연구소 탐방
1987, 10, 21 전례 음악과 찬송생활 1987, 11, 30 대학생 연합 문화제 개최
1987, 9, 20 우리것 알고 배우자 1988, 7, 17 우리가락으로 하느님 찬미
1988, 8, 28 전통 가락의 우수성 보여준 국악미사 1988, 12, 15 88가톨릭 문화계 결산
1988, 8, 7 국악 도입으로 토착화 시도 1988, 1, 10 성청, 세속음악 성당연주 금지
1988, 9, 18 교회 음악에 던진 신선한 충격 1988, 5, 21 그레고리안 성가 보존, 왜 필요한가
1988, 8, 28 우리 가락에 담은 미사곡 1989, 1, 1 전례음악 토착화에 앞장
1989, 7, 20 가톨릭 국악 협회 창림
1989, 5, 28 종로 노동 사목회관--근로자 위한 풍물강습
1989 1, 22 국악미사곡 연주--부산국악인회
1989, 5, 14 다니엘라 발표회--창작성가 민요 등 열창
1989, 1, 22 국악성가 양악 위주에 신선감 1989, 2, 5 강수근 수사 국악 미사곡 첫 발표회
1990, 6, 24 가톨릭 국악 성가 발표회 1990, 7, 8 국악 성가 발표 지휘한 이상국 교수
1990, 10, 21 순교역사 성음악통해 알릴 기회
1990, 6, 24 우리가락 전례안에서 승화 -서을 목1동 야외 국악 견진 미사
1991, 2, 24 한국 교회 음악 한국 정서 뿌리둔 내실화 주력해야
1991, 4, 21 성음악 토착화 연구원 27일 정식 발족 1991, 10, 6 안동교구 제 6회 성가, 농악 발표회
1991, 3, 31 그레고리오 성가 토착화 가능한가 1992, 12, 6 서울 서교동본당 국악 성가대 발족
1993, 4, 25 성음악 토착화 연구원 초청 1993, 7, 25 교회내 전통 문화 찾기 활발
1993, 12, 26 춤, 국악으로 어우러진 미사 봉헌
1993, 11, 21 가톨릭 음악원- 전례음악 연구, 인재 양성 요람
1993, 9, 6 신명에 스민 신의 노래 추구- 풍물패 소리터
1993, 8, 29 가톨릭음악원 10년만에 완공 1993, 11, 21 가톨릭음악원 봉헌
1993, 9, 1 로사리오 성가단 103위 성인 순교자 현양 마당극 개최
1994, 4, 3 성음악토착화연구원 로사리오성가단 5월 카네기홀등 순회공연실시
1994, 1, 23 2월중 가톨릭국악실내악단 창단
1994, 2, 13 국악의 해/ 교회음악토착화를 위한 제언(1)
1994, 10, 9 대한민국 종교음악제 13일개막
1994, 11, 13 12월 1일 우리소리 관현악단 창단 공연
1994, 5, 1 가톨릭국악실내악단 우리소리 연주회 개회
1994, 10, 30 주일미사 한 대라도 국악으로 해야
1994, 1, 2 94년 "국악의 해"맞는 교회내 국악성가활동실태
1994, 1, 30 국악의 해/교회음악 토착화를 위한 제언(2)
1995, 3, 12 가톨릭우리소리성가집 테잎 판매 1995, 10, 15 제1회 가톨릭 전례음악 축제 개막
1995, 7, 23 10월 14-15일 전통전례음악축제/10월 28일 성가대 지휘자 학술대회
1995, 2, 26 국악"묵주의 기도"출시 1997, 5, 25 전주교구 가톨릭계술단 창단
1997, 3, 16 춘천교구 국악합창단 창단 1997, 3, 9 국악명상음반 바오로딸 제작 출시
1997, 6, 29 광주교구 희년기념 국악공연 1997, 9, 14 "미사곡4"출반 서행자수녀곡
1997, 12, 7 교회음악의 한국화노력
1997, 8, 17 다솜 미디어"교우들과,,,미사곡 2,3" 및 개창용 악보 제작
1998, 5, 3 새국악미사곡 만든 윤병철씨
1999, 9, 12 성음악토착화 연구원과 로사리오 성가단 창단 10주년 기념공연
1999, 9, 12 방윤석 신부 순교자 아리랑 작곡
1999, 5, 2 새국악미사곡 낸 가톨릭한국음악연구원장 김종국 신부
2000, 2, 20 대구가톨릭음악원장 김종헌신부 인터뷰"올바른 전례음악보급에 최선"
4) 학위논문
강민주. "그레고리안 성가가 한국 가톨릭음악창작에 미친 영향 연구: 이문근의 missa Ordinarium을 중심으로." 대구: 계명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3.
이문근 신부의 미사곡을 중심으로 그레고리안성가에서 나타나는 음악적 요소를 연관지어 분석하고 살펴보고 있다. 미사의 유래와 순서 그리고 통상문에 대해서 음악사적인 의의를 살펴보고 음악적 일반특징을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 이문근 미사곡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있다.
김영미. "가톨릭미사 전례경에 관한 연구." 서울: 숙명여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8.
김은주. "한국 가톨릭 전례음악의 토착화 연구: 이문근 Missa Ordinarium2번을 중심으로." 대구: 대구효성가톨릭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6.
이문근미사곡을 중심으로 토착화의 가능성을 조명한 논문이다. 필자는 먼저 가톨릭전례음악의 정의와 그레고리안챤트의 쓰임을 살펴보고, 토착화에 대한 개념들을 정립한 다음, 이문근미사곡에서 사용한 음악어법들을 토착화와 관련하여 논하고 있다.
박해숙. "한국 가톨릭 성가의 현황에 대한 고찰." 서울: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 1986.
방삼민. "전례성가의 토착화와 국악의 역할." 광주: 광주가톨릭신학대 석사학위논문, 1996.
한국전례성가의 토착화를 논의한 글로 토착화의 방안으로 국악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토착화의 의미와 한국전례성가의 역사와 토착화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우리전통음악의 특징과 구조를 먼저 살펴보고, 이것이 현재 미사전례 각 부분에 국악의 적용 가능성을 논의한다. 필자는 특히 그 적용가능성을 장단과 조중심으로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오숙영. "천주교 성가가사고--특히 최양업 신부의 성가를 중심으로." 서울: 숙명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71.
최양업신부의 천주가사와 경향신문, 경향잡지에 발표된 개화기 단형 천주가사를 연구하여 천주가사연구에 일보진전을 획득했다. 최양업신부의 천주가사는 1기로, 1906년부터 1910년까지 경향신문에 실린 41편의 천주가사는 2기로, 1911-1924년까지 경향잡지에 실린 81편의 천주가사는 3기로 나누었는데, 주로 2-3기의 천주가사 분석에 역점을 두고 있다. 2-3기의 천주가사는 내용상 각각 7종류와 4종류로 나누었으며, 2기에서는 4편을 성가류로 보았고, 3기에서는 17편을 성가류로 보았다.
유정숙. "한국 가톨릭성가집의 변천에 관한 연구." 서울: 숙명여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7.
한국천주교의 성가발달사를 광복을 기준으로 시대사적으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특히 그 안에서 한국인 작곡의 성가와 그레고리안 성가를 따로 분석하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사용되는 성가와 1948년도 이후 한국인이 작곡한 성가의 악곡을 분석하고 성음악의 토착화에 대한 견해와 전망, 그리고 통일성가집에 대한 의의 및 전망을 마지막으로 논의하고 있다.
윤선민. "한국가톨릭미사곡의 변천과 현황." 대구: 계명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0.
한국가톨릭미사곡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해왔는지, 그리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미사곡의 형태는 어떠한지를 논의한 논문이다. 본론에서 필자는 먼저 교구에서 발행된 초기교회에서 1986년에 이르는 성가집들을 중심으로 거기에 수록된 미사곡과 1980년대 이후 출판사에서 발행된 단행본 미사곡을 분석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논문전반부에서 역사적으로 살펴본 미사곡들을 본론의 마지막에서는 다시 각각의 미사곡이 가지고 있는 음악양식적 특징에 따라 재분류하여 제시하고 있다.
윤영혜. "그레고리안 챤트의 화음반주에 관한 고찰." 서울: 이화여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76.
이상준. "한국 가톨릭성가의 시대적 배경에 관한 연구." 서울: 경희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3.
성가의 시대사적 변화를 고찰한 논문이다. 본론에서 필자는 먼저 한국가톨릭교회의 창설과 천주가사에 대해서 말하고 일제하의 성가, 광복후 초기의 성가 그리고 현재 사용중인 성가를 분류해서 설명하고 있다. 또한 미사전례의 용어와 정의 그리고 분류를 보여주고 있다.
장안숙. "한국가톨릭성가의 역사적 변천에 관한 연구." 대구: 계명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75.
필자는 본 논문에서 각 성가집을 중심으로 한국가톨릭성가의 역사적 변화를 살펴보고 있다. 먼저 한국가톨릭성가의 변천과 초기 성가를 최양업신부의 활동과 관련하여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1924년 조선어 성가집, 1936년도 대구교구 발행의 성가집, 1938년과 1957년에 발행된 함흥교구 발행성가집을 중심으로 성가들을 언급하면서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성가의 합창실태와 토착화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전미정. "대구가톨릭교회음악의 변천사: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과 이후." 대구: 경북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1.
전례음악에 직접적 초첨을 맞추진 않았지만 바티칸 공의회를 기준으로 대구 가톨릭음악에 초점을 맞추어 대구 가톨릭교회음악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고찰하고 있다.
조수영. "국악미사곡의 분석연구." 광주: 전남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98.
조수영의 논문은 유일하게 국악미사에 관한 것인데 그는 논문에서 강수근의 국악미사곡을 분석하고 있다. 그는 분석에 앞서 작곡배경과 토착화에 관한 역사적 이론적 배경을 제시하고 실질적인 미사곡 분석에 들어가고 있다. 내용은 가사, 조, 형식, 전체장단에 따라 각각 분석하고 있고, 각 한 소절씩 음절과 강제, 말의 박자, 낭송리듬, 문장으로 나누어 전체미사곡을 분석하고 있다.
조향숙. "한국 가톨릭음악의 토착화 방안--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한국 가톨릭음악에 미친 영향." 대구: 계명대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5.
본 논문에서는 한국가톨릭음악의 토착화에 대해서 꼼꼼히 짚어보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훈령을 제시하며 공의회 이전과 이후의 한국가톨릭음악의 발전과정을 짚어보고 그것을 각각 일반성가와 미사곡, 그레고리안 성가등으로 분류하여 분석해 보고 한국가톨릭음악의 토착화방안으로 가사, 가락, 리듬, 화성등의 각 음악의 요소들을 하나씩 분석하고 있다.
최필선. "초기 한국 가톨릭교회음악 연구." 부산: 동아대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89.
천주가사에 관한 논문으로 천주가사를 채보하여 분석한 논문이다. 채보한 논문을 분석하고 천주가사를 새로이 조망함으로서 천주가사를 음악의 한 분야로 인식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성래. "天主歌辭의 史的硏究." 서울: 고려대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84.
1980년대 초반, 아직 미개척 분야였던 국문학계에 심도 깊은 연구로 천주가사를 논한 글. 서론에서 천주가사의 개념, 연구사 등을 개론하였고, 본론에서는 천주가사의 시대구분과 자료의 제시, 작품각론, 결언으로 되어있다. 시대구분은 3기로 나누었고 1기는 교회창건기의 작품들, 2기는 박해 및 전교시대의 작품들, 3기는 신교자유시대의 작품들로 엮었다.
홍선희. "가톨릭 통일성가집의 발행과정에 관한 연구." 서울: 숙명여대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7.
이 논문은 1985년 새로 발행되었던 통일성가집의 변천과 내용을 분석하고 있다. 홍선희는 여기서 통일성가집에 수록된 곡들을 한국인이 작곡한 성가곡, 외국성가곡, 그레고리안 성가곡, 시편 성가곡, 성서를 주제로 작사한 성가곡, 미사곡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 음악문화만들기>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