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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나를 받아주어야

배델창 2020. 1. 9. 10:36


 

복음에 씨 뿌림의 비유가 나옵니다.

씨를 뿌렸는데 어떤 것은 돌밭에 어떤 것은 가시덤불에 등등.

주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종교적 열등감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무지막지한 종교인들이 망나니의 칼처럼 휘두르기도 합니다.

 

신자들보고 믿음이 약한 자들이라고, 가시덤불같이 유혹에 약한 자들, 돌밭처럼 마음이 굳어 버린 자들이라고 설교대에서 폭언을 해서 신자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일이 적지 아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신은 아주 믿음이 깊은 사람,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는 사람인 양 행세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완전한 믿음,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요구하신 걸까요? 사람들이 정말 당신 말처럼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열두 사도가 이리저리 헤매는 것을 보면서도 내치지 않으신 것은 사람이 온전한 마음을 갖기 어렵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성장과정의 순탄함 여부에 의해서 형성됩니다. 어른들로부터 관심 받지 못하고 방치된 상태로 자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돌밭처럼 되어 버립니다. 어린 시절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해서 영양결핍을 겪은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이 가시덤불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평생 노력해도 만개한 꽃처럼 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런 사람들은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이 상처투성이고 병적인 콤플렉스에 치인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치유하는 데 전념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비록 돌밭에 돌을 다 치우지 못할지라도, 비록 가시덤불을 다 치우지 못하더라도 주님께서는 당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절대로 내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 사도를 보면 제자들을 대하는 주님의 눈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일부 종교인들이 완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것인가? 그들의 믿음이 깊어서가 아니라 정신적 문제가 깊어서입니다. 완전강박증, 세심증, 구원불안증 같은 신경증적 증세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병적인 마음이 병적인 하느님 상을 만들어내고, 그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우상숭배의 결과라는 말입니다.

 

가끔 정상을 정복한 사람들의 기사가 신문 지면을 메우곤 합니다. 그런 기사를 볼 때 부러움과 열등감을 가진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산을 타는 분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정상이란 산꼭대기가 아니라 내 몸이 허락하는 곳이다.” 산에서 절대로 무리하지 말라는 말이지요. 험한 산에서의 무리는 죽음을 초래한다는 것을 산사람들은 잘 압니다.

 

이것은 신앙생활도 사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젊은 사람들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다가 죽거나 자살하는 일들을 보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무리하게 해서 가정도 망치고 자신의 인생도 망가뜨리는 경우도 자주 보았습니다. 자기 몸이 허락하는 한도를 넘어선 삶을 살았기에 비참한 결말을 맞은 것입니다. 몸이건 마음이건 신앙생활이건 무리하면 안 됩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갈 수 있는 만큼만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교회 안에서 신자 분들에게 무리하게 정상을 가야 한다고 설파하는 사람들을 보면 입을 꿰매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합니다. 자기도 못 간 곳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사람들. 바리사이들이 그 짓거리하다가 주님께 야단맞았는데, 현대판 바리사이들이 여전히 같은 짓을 해서 심약한 신자들을 신경증 환자로 만들거나 심한 경우 정신병자로 만들기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자신의 약한 부분을 받아들이고 고치려고 노력하다가 안 되면 그냥 데리고 사는가하면 어떤 이들은 죽어라 고치려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약함을 지적하면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다 같이 약한 사람들인데 반응은 왜 다른가? 성장기에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은 마음 안에 불안감이 있습니다.

내가 정말 잘하는 걸까?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걸까? 이런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장점보다 약점이 더 커 보입니다. 그러나 그런 약점을 가졌다는 사실조차 인정하기 싫어서 보지 않으려고 하고, 약점으로 인하여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서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우월한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필사적인 노력을 합니다. 이들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폭력적입니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공격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고립되고 맙니다. (이들은 입버릇처럼 믿는 것은 돈뿐이고 내 주먹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성공을 해도 그 자아는 그대로이고요.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고, 외적인 성공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내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사람들은 이런 결함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누구나 약합니다. 그 약한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주님께서 약한 나를 받아들이셨듯이.

 

군대에서 구보할 때에 전우애가 깊은 군인들은 낙오병이 없도록 군장을 대신 매주고 어깨를 부축해서 데리고 갑니다. 사람도 이러하거늘, 만약 주님께서 그런 정이 없이 낙오한 사람들을 버리신다면 그런 주님은 믿을 가치가 없는 신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구렁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영혼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분, 사랑이신 분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간에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큰 사랑을 믿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