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을 바꾸고 싶어 합니다. 찌질하게, 궁색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기 인생을 바꾸기 힘들어합니다. 바꾸려는 의지는 있는데 초점을 찾지 못해서입니다. 인생을 바꾸는 첫 번째 단추는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그리 다양하지 않습니다. 도돌이표를 그리듯이 같은 행위, 같은 삶을 반복하기 십상입니다. 그런 반복행위가 유익하고 생산적인 면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합니다. 건강관리의 경우를 보면 아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건강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꾸준히 운동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꾸준히 술만 마시면서 자기 몸을 관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합리적인 이유를 댄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뻔한 것인데, 그것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도록 부추기는 마음 안의 동력 때문입니다. 인생을 바꾸려면 자신의 인생 패턴을 알아야 하고, 그런 패턴을 반복하게 하는 마음 안의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이 일이 쉽지 않은 것은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의지가 누구에게나 생기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체념과 순응이 아니라, 변화와 도전을 해야 하는 마음공부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자청년이 주님을 따라나서지 못한 사례가 그것을 입증합니다.
마음은 참으로 어려운 대상입니다. “나는 내 마음을 다 알아” “나는 네 마음 다 알아” 말하지만, 마음은 그리 쉽게 자기를 열지 않습니다. 마음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립니다. 수많은 방어기제들을 사용해서 다른 사람이 자기를 모르게 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자신도 자기 마음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우리는 세상을 보고, 판단하고, 선택합니다. 그래서 숱한 문제를 일으키곤 합니다. 특히 종교 안에서, 신앙 안에서 마음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일어나는 무지한 일들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종교인들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 아주 인색합니다. 마음을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마음 안의 어두움을 먼발치에서 보고 쉽게 단정 짓습니다. 심지어 마음을 보는 것을 금기시하기조차 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알아가는 일에는 성역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의 그 어떤 부분도 만천하에 드러나야 합니다. 마음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마음을 아는 길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세상살이가 짜증나고 주위의 것들이 다 귀찮아질 때… 왜 그런 걸까? 자기 마음 안에 쓸데없는 생각들이 쓰레기처럼 들어차서 그렇습니다. 만약 방 안에 쓰레기가 가득 찼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작은 공간의 여유도 없이 쓰레기가 꽉 들어찬 방은 사람을 질식하게 만들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그렇습니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들어찬 마음은 짜증을 유발하고, 온갖 좋지 않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마음을 비워라,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마음 안의 쓰레기들을 비울 수 있을까? 작은 기쁨을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엔돌핀과 세로토닌 같은 물질들이 분비되어 뇌가 웃을 수 있고, 그것들이 마음 안의 쓰레기들을 치운다는 것입니다. 작은 기쁨을 만드는 방법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저렴한 비용으로 혼자서 하는 방법부터 소개하자면 음악 감상(창문을 모두 닫고 고음으로 듣는 것), 혼자 산보하기 혹은 숨이 차도록 조깅하기, 커피 한 잔 마시기,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편지 쓰기, 성당 안에서 우아하게 기도하기, 피정하기(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수도원에서의 피정) 등입니다. 생활하다 보면 늘 쓰레기가 생기는 것처럼 마음 안의 쓰레기도 그렇습니다. 날마다 쓰레기 치우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 동네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무너져갑니다.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청소하는 동네는 가난해도 품위 있어 보입니다. 이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얼굴 특히 눈빛에 많이 노출됩니다. 말과 표정이 같은 사람은 아주 건강한 사람입니다. 마음이 슬플 때는 슬픈 표정, 기쁠 때는 기쁜 표정, 화날 때는 화난 표정을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언행일치와 같다고 할까요? 반대로 말과 표정이 다른 사람들 혹은 무표정한 사람들은 여러 모로 심리적 문제를 갖습니다. 감정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억지로 막아버리고 흐름을 바꿔버리기에 탈이 납니다. 치료집단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훈련을 시킵니다. 그래야 심리적 건강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딸들을 시집보내면서 부모님이 잘살아야 한다고 당부하는데, 이 말에는 문제 일으키지 말고 잘 참고 살라는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신부들 역시 본당에서 문제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사목하면 잘산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평가를 받는 신부들 중에서 표정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표정 관리를 하는 사람들은 가면을 쓴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자신 안의 감정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을 막고 있는 답답한 느낌을 줍니다. 하회탈의 웃는 가면을 닮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가? 잘산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그저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거지, 자기가 잘살고 있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잘살아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하면 마음은 자동적으로 삶의 기대치를 만들고, -그것도 아주 높이- 자아가 그 기대치를 채우느라 허덕이는 삶을 살게 되면서, 힘겨운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얼굴에 가면을 쓰게 됩니다. 자기감정을 있는 대로 표현하는 시간, 이것이 기도의 시간이고, 힐링의 시간입니다.
* 홍성남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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